신학

죄 없는 사람이 돌 던지란 말씀을 왜곡하지 말자

틀니우스키케로 2024. 2. 18. 13:34

1 예수님께서는 올리브 산으로 가셨다. 2 이른 아침에 예수님께서 다시 성전에 가시니 온 백성이 그분께 모여들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앉으셔서 그들을 가르치셨다. 3 그때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에 세워 놓고, 4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5 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스승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6 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여 고소할 구실을 만들려고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몸을 굽히시어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기 시작하셨다. 7 그들이 줄곧 물어 대자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어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8 그리고 다시 몸을 굽히시어 땅에 무엇인가 쓰셨다. 9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나이 많은 자들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떠나갔다. 마침내 예수님만 남으시고 여자는 가운데에 그대로 서 있었다. 10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고 그 여자에게,

 

“여인아, 그자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단죄한 자가 아무도 없느냐?”

 

하고 물으셨다. 11 그 여자가

 

“선생님, 아무도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요한 8,1-11)

 

 

 

 

 

 

요한 복음서 8장의 내용은 죄를 합리화하는 내용이 아니다.

 

종종 신자들이 남을 바리사이라 욕하려고 이 구절을 오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예수님께서는 죄를 죄라고 분명히 전제하신다. 예수님은 "다시는 죄짓지 마라"라고 말씀하셨지 "그건 죄가 아니다"고 하신 게 아니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고 하셨지 그 죄를 합리화하신 게 아니다. "죄를 미워하되 죄인을 미워하지 말라"(Cum dilectione hominum et odio vitiorum)"는 말과 비슷한 의도라 볼 수 있다.

 

일상적인 예를 들자면, 교도소의 제소자나 사회로 돌아온 전과자들을 손가락질하지 말고 받아주라는 의미로 보면 되겠다. 그 죄를 합리화할 수는 없지만, 서로 참아주고 용서하고 받아주자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교회 역시도 그렇다. 교회는 죄 없는 사람들의 무균실이 아니고, 죄를 죄가 아니라고 합리화하는 궤변의 공간이 아니다. 서로 용서하고 서로 용서 받는 공동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