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비는 땅에서 싹이 돋아나게 한다.>
제2독서
<피조물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복음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복음에 의하면, 제자들에게는 하늘 나라의 신비(ta mystēria tēs basileias tōn ouranōn)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다고 하신다.(마태 13,11)
여기서 잠깐 짚고 가자면, 신비(mystērion)는 다음 두 가지 뜻을 가진 희랍어이다.
ㄱ)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진리'
ㄴ) '성사'(하느님의 은총이 감각적인 형태를 통해 전달되는 것)
곧 '하늘 나라의 신비'란 '하늘 나라에 관한 진리' 내지는 '교회'(=하늘 나라의 성사)를 가리킨다. 이 둘은 구분되지만, 후자가 전자를 성사적으로 드러낸다.
곧 제자들에게는 '하늘 나라에 관한 진리' 내지는 '교회'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청자의 마음속에 적어도 이해하려는 어떤 단초가 있어야 한다. 이런 단초가 없는 사람들에겐, '하늘 나라의 진리'는 폐쇄집단에게 계시된 비교(祕敎)처럼 보일 뿐이며, '교회'란 단지 감각적인 형태를 갖춘 종교단체로만 보일 뿐이다.
씨 뿌리는 사람 비유 뿐만이 아니라, 모든 비유와 상징, 더 나아가 각종 그리스도교적 표지(signum, 標識) 전체가 '듣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겐 그저 무의미할 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경이 구원에 대한 비관론을 펼치고 있다고 할 순 없다. 제1독서는 이렇게 말한다.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이사 55,11)
당연히 이것이 "무슨 짓을 해도 구원받는다"라는 총체적 구원론(apokatastasis)은 아니다. 복음서의 구절에서는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을 진지하게 경고하고 있다. 인간이 최종적으로 스스로의 파멸을 선택하여 끝장날 가능성을 성경은 현실적으로 경고한다. 그러나 동시에 성경은 하느님의 구원 의지와 능력에 대해서 희망을 두고 있다.
'하느님의 구원 의지와 능력에 대한 희망'과 '나의 최종적인 파멸 가능성'은 상호 모순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이 둘을 모두 긍정한다. 우리는 단지 스스로가(더 나아가 온 인류가) 최종적인 파멸을 선택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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