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 독서&복음 묵상

[20230716 가해] 연중 제15주일

틀니우스키케로 2023. 7. 16. 03:10

제1독서

<비는 땅에서 싹이 돋아나게 한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55,10-11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0 “비와 눈은 하늘에서 내려와 그리로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땅을 적시어 기름지게 하고 싹이 돋아나게 하여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먹는 이에게 양식을 준다.
11 이처럼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피조물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8,18-23
형제 여러분, 18 장차 우리에게 계시될 영광에 견주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19 사실 피조물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20 피조물이 허무의 지배 아래 든 것은 자의가 아니라
그렇게 하신 분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21 피조물도 멸망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의 자유를 얻을 것입니다.
22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지금까지 다 함께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23 그러나 피조물만이 아니라 성령을 첫 선물로 받은 우리 자신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를, 우리의 몸이 속량되기를 기다리며
속으로 탄식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3,1-23
1 그날 예수님께서는 집에서 나와 호숫가에 앉으셨다.
2 그러자 많은 군중이 모여들어,
예수님께서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군중은 물가에 그대로 서 있었다.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비유로 말씀해 주셨다.
“자,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4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들은 길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
5 어떤 것들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
흙이 깊지 않아 싹은 곧 돋아났지만, 6 해가 솟아오르자 타고 말았다.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린 것이다.
7 또 어떤 것들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렸다.
8 그러나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었는데,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서른 배가 되었다.
9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10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왜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1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에게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12 사실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13 내가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이유는
저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14 이렇게 하여 이사야의 예언이 저 사람들에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너희는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리라.
15 저 백성이 마음은 무디고 귀로는 제대로 듣지 못하며 눈은 감았기 때문이다.
이는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서는 돌아와
내가 그들을 고쳐 주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16 그러나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
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고자 갈망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듣고자 갈망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18 그러니 너희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새겨들어라.
19 누구든지 하늘 나라에 관한 말을 듣고 깨닫지 못하면,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아 간다.
길에 뿌려진 씨는 바로 그러한 사람이다.
20 돌밭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들으면 곧 기쁘게 받는다.
21 그러나 그 사람 안에 뿌리가 없어서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그는 곧 걸려 넘어지고 만다.
22 가시덤불 속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이 그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한다.
23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고 깨닫는다.
그런 사람은 열매를 맺는데, 어떤 사람은 백 배, 어떤 사람은 예순 배,
어떤 사람은 서른 배를 낸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에 의하면, 제자들에게는 하늘 나라의 신비(ta mystēria tēs basileias tōn ouranōn)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다고 하신다.(마태 13,11)

 

여기서 잠깐 짚고 가자면, 신비(mystērion)는 다음 두 가지 뜻을 가진 희랍어이다.

ㄱ)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진리'

ㄴ) '성사'(하느님의 은총이 감각적인 형태를 통해 전달되는 것)

곧 '하늘 나라의 신비'란 '하늘 나라에 관한 진리' 내지는 '교회'(=하늘 나라의 성사)를 가리킨다. 이 둘은 구분되지만, 후자가 전자를 성사적으로 드러낸다.

 

곧 제자들에게는 '하늘 나라에 관한 진리' 내지는 '교회'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청자의 마음속에 적어도 이해하려는 어떤 단초가 있어야 한다. 이런 단초가 없는 사람들에겐, '하늘 나라의 진리'는 폐쇄집단에게 계시된 비교(祕敎)처럼 보일 뿐이며, '교회'란 단지 감각적인 형태를 갖춘 종교단체로만 보일 뿐이다.

 

씨 뿌리는 사람 비유 뿐만이 아니라, 모든 비유와 상징, 더 나아가 각종 그리스도교적 표지(signum, 標識) 전체가 '듣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겐 그저 무의미할 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경이 구원에 대한 비관론을 펼치고 있다고 할 순 없다. 제1독서는 이렇게 말한다.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이사 55,11)

 

당연히 이것이 "무슨 짓을 해도 구원받는다"라는 총체적 구원론(apokatastasis)은 아니다. 복음서의 구절에서는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을 진지하게 경고하고 있다. 인간이 최종적으로 스스로의 파멸을 선택하여 끝장날 가능성을 성경은 현실적으로 경고한다. 그러나 동시에 성경은 하느님의 구원 의지와 능력에 대해서 희망을 두고 있다.

 

'하느님의 구원 의지와 능력에 대한 희망'과 '나의 최종적인 파멸 가능성'은 상호 모순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이 둘을 모두 긍정한다. 우리는 단지 스스로가(더 나아가 온 인류가) 최종적인 파멸을 선택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