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 독서&복음 묵상

[20231126 가해]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

틀니우스키케로 2023. 11. 27. 20:36

제1독서

<너희 나의 양 떼야. 나 이제 양과 양 사이의 시비를 가리겠다.>
▥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34,11-12.15-17
11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내 양 떼를 찾아서 보살펴 주겠다.
12 자기 가축이 흩어진 양 떼 가운데에 있을 때,
목자가 그 가축을 보살피듯, 나도 내 양 떼를 보살피겠다.
캄캄한 구름의 날에, 흩어진 그 모든 곳에서 내 양 떼를 구해 내겠다.
15 내가 몸소 내 양 떼를 먹이고, 내가 몸소 그들을 누워 쉬게 하겠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16 잃어버린 양은 찾아내고 흩어진 양은 도로 데려오며,
부러진 양은 싸매 주고 아픈 것은 원기를 북돋아 주겠다.
그러나 기름지고 힘센 양은 없애 버리겠다.
나는 이렇게 공정으로 양 떼를 먹이겠다.
17 너희 나의 양 떼야,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양과 양 사이, 숫양과 숫염소 사이의 시비를 가리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그리스도께서는 나라를 하느님 아버지께 넘겨 드리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실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15,20-26.28
형제 여러분,
20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죽은 이들의 맏물이 되셨습니다.
21 죽음이 한 사람을 통하여 왔으므로 부활도 한 사람을 통하여 온 것입니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날 것입니다.
23 그러나 각각 차례가 있습니다. 맏물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다음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그분께 속한 이들입니다.
24 그러고는 종말입니다.
그때에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권세와 모든 권력과 권능을 파멸시키시고 나서
나라를 하느님 아버지께 넘겨 드리실 것입니다.
25 하느님께서 모든 원수를 그리스도의 발아래 잡아다 놓으실 때까지는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셔야 합니다.
26 마지막으로 파멸되어야 하는 원수는 죽음입니다.
28 그러나 아드님께서도 모든 것이 당신께 굴복할 때에는,
당신께 모든 것을 굴복시켜 주신 분께 굴복하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실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사람의 아들이 자기의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아 모든 민족들을 가를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5,31-4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1 “사람의 아들이 영광에 싸여 모든 천사와 함께 오면,
자기의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을 것이다.
32 그리고 모든 민족들이 사람의 아들 앞으로 모일 터인데,
그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가를 것이다.
33 그렇게 하여 양들은 자기 오른쪽에, 염소들은 왼쪽에 세울 것이다.
34 그때에 임금이 자기 오른쪽에 있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35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36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37 그러면 그 의인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신 것을 보고 먹을 것을 드렸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38 언제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따뜻이 맞아들였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습니까?
39 언제 주님께서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찾아가 뵈었습니까?’
40 그러면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41 그때에 임금은 왼쪽에 있는 자들에게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 부하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42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으며,
43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이지 않았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병들었을 때와 감옥에 있을 때에 돌보아 주지 않았다.’
44 그러면 그들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시거나 목마르시거나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또 헐벗으시거나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시중들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45 그때에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
46 이렇게 하여 그들은 영원한 벌을 받는 곳으로 가고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갈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전근대에 왕의 신민들은 현대보다 훨씬 '개인화'된 국가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구약학자 Jean-Louis Ska는 이렇게 설명한다:

고대 세계에서 ... 한 개인과 그가 속한 사회 공동체 간의 대립과 갈등 역시 현대의 세상과는 상당히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왜냐하면, 고대 사회 자체가 이미 훨씬 '개인화'된 사회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개인이나 개별 부족들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고대의 한 왕국에서, 임금은 왕국의 일치를 이룬 사람이자, 또한 일치를 보장해주는 존재였다. 반면, 왕국을 이루고 있던 백성들은 서로 다른 민족들에 속할 수 있었고 또 그들 각자의 문화 역시 큰 차이를 보일 수 있었다. 그러나 백성은 모두 다 자신이 속한 왕국의 임금과 어떤 식으로든지 연결되어 있었다.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나라'나 '국가'가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관련된 모든 사람을 하나로 묶는 유일한 한 임금이 존재하였을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짐이 곧 국가다"(L'état, c'est moi)라는 루이 14세의 유명한 문장은 단지 태양왕으로 불린 그의 오만함을 드러내는 것만이 아니라, 오히려 고대 세계의 통치 제도 하에 만연해 있던 임금과 왕국의 정체성에 대한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잘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다.

이렇듯 누군가에게 소속되어 있다는 느낌은 대부분 한 명의 임금이나 군주 또는 조상과 갖게 되는 개인적인 결속 관계를 의미했다. 물론 가족이나 부족, 종족, 더 나아가 민족과 같은 한 집단에 속해 있다는 소속감도 여전히 존재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서조차 그 집단의 서로 다른 구성원을 하나로 묶어주는 연결 고리는 제도적인 차원이 어니라, 훨씬 개인적인 차원에 머물러 있었다.

-Jean-Louis Ska, 《잉크 한 반울: 성경이 제시하는 전망들에 대한 고찰(UNA GOCCIA D'INCHIOSTO: Finestere sul Panorama Biblico》, 박문수 번역, 성서와함께, 2021, p.235

 

 

우리는 이 표상을 교회와 예수님의 관계에 적용할 수 있다. 교회는 '하느님의 백성'이기에 당연히 수많은 행정기구들을 가지고 있으며 국가와 비슷하지만,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국가 개념과 동일시하는 건 비역사적인 인식이다.(예수님은 1세기에 활동하신 유다인이시다.) 어쩌면 '모든 백성을 하나로 묶은 유일한 한 임금'이 존재할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교회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은 단 하나의 천자(天子)인 그리스도와 갖게 되는 개인적인 결속 관계를 의미한다. 물론 이것이 현대의 개인주의적 신심을 정당화하는 건 아니며, 성경은 명백히 공동체적인 표상들(예루살렘, 도시, 백성 등)을 교회에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교회의 공동체성들은 단 한 분의 임금이신 그리스도에 기반한 것이다.

 

최초로 저술된 복음서인 마르코 복음서는, 다음과 같이 직역되는 헤드라인(1장 1절)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Ἀρχὴ τοῦ εὐαγγελίου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υἱοῦ θεοῦ
[Archē tou euangeliou Iēsou Christou huiou theou]
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에우앙겔리온의 시작

 

 

당시에 에우앙겔리온(복음)은 정치적으로는 군주의 탄생이나 즉위에 사용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신의 아들'은 로마 황제를 수식하는 말이었다. 또한 마르코 복음서는 AD 70년 전후에 저술되었는데, 그때는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아들 티투스를 시켜서 예루살렘을 파괴한 때(AD 70)였다.[각주:1]

 

다시 말해서, 마르코 복음서 저술 당시 로마제국에는 '에우앙겔리온'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베스파시아누스의 아우구스투스(Augustus, 존엄하신 분, 흔히 '황제'로 의역됨) 즉위라는 '에우앙겔리온'이 울려퍼졌고, 아우구스투스의 아들인 티투스 장군이 예루살렘을 파괴한 '에우앙겔리온'이 울려퍼졌다.

 

바로 그 때, 전혀 새로운 '에우앙겔리온'을 담은 책이 세상에 나왔다. 베스파시아누스와 티투스의 '에우앙겔리온'은 짓밟고 파괴하여 선포된 '에우앙겔리온'이었고, 그 목표는 예루살렘이었다. 하지만 나자렛 예수의 '에우앙겔리온'은 일으키고 치료하여 선포된 '에우앙겔리온'이었다. 복음사가는 바로 이 사람을 세상의 유일한 천자(天子)이자 진정한 아우구스투스(Augustus)라고 확신하며 큰 소리로 외친 것이다:

 

Ἀρχὴ τοῦ εὐαγγελίου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υἱοῦ θεοῦ
[Archē tou euangeliou Iēsou Christou huiou theou]
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에우앙겔리온의 시작

 

 

 

 

 

 

 

 

 

 

  1. AD 66년, 베스파시아누스 '장군'은 유다인들의 봉기를 진압하기 시작한다. 중간에 그는 '황제'로 추대되고 아들인 티투스가 봉기 진압을 인수인계한다. AD 70년 티투스는 예루살렘을 파괴하고 훗날(AD 79) 황제에 오른다. [본문으로]